396. 2월 檄文日誌#2(我田日記 '26.2.1)


 1.
2월이 되었다.
거실 창을 통해 식탁 밑까지 들어 오던 햇살이 슬금슬금 후퇴해 소파 중앙을 겨우 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나이 들고 늙어 가는 것이지..  
 
4년 전, 40여년의 객지 생활을 끝내고 고향인 원주 기업도시로 돌아왔다.
고향이 좋긴 하다. 평생 고향을 지킨 중고등학교 동창들도 있고, 양가 부모님이 거주하시던 (이제는 남의 소유가 되었지만) 집들도 있고, 그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두 아이의 기억도 남아있다. 
 
2.
사범대 졸업 후 바로 모교로 부임해 교장으로 퇴직한 동기가 있다.
원주에 정착하고 얼마 안되어, 그 친구에게, 내가  꼭 찾아뵈어야 할 은사님의 근황을 여쭈니,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우리한테 연락도 안 해줬냐고 원망하듯 물었다.
헌데 돌아온 대답이.. "원주 사는 우리도 몰랐다."였다. 
"정말?, 그렇다면 애들을 어떻게 키우셨길래.." 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다시 얼마 후, 서울 사는 여자 동기가 내려왔다.
이 친구가 그 은사님댁 가까이 살아 자주 찾아 뵀다고 한다.
은사님 장례에 대해 물어 보니, 사모님이 부고 내지 말라고 강력히 말리셨다는 것이다.
"왜?"
"돌아 가시면서까지 주변에 폐를 끼칠 일은 아니라면서 " 한사코 말리셨다는 것이다.
산소에라도 찾아 뵈야겠다 하니, 그도 아닌 것 같단다.
유족들 뜻이 그런데 굳이 장지를 물어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겠냐며.. 
결국, 그렇게 그 은사님에 대한 죄스러움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다. 
 
 3.
그 무렵 캐나다로 이민 간  고교 동기 k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
함께 또 다른 고교 은사님을 뵈러 갔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후, 댁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내일 출국한다며, 남아 있던 한화를 다 챙겨 용돈을 드리는 것이다.
순간, 뜨끔했다. 이민 가서 자식 챙기고 먹고 살기가 여간 어렵겠는가.
그런 녀석이 이런 마음가짐인데, 지척에 와서 사는 내는 이게 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해서 3년 전부터, 명절 즈음에 생존해 계신 두 분 은사님께 죄송한 마음을 담아 이런저런 선물을 보내고 있다.
돌아 가신 은사님에 대한 예의라고 우기면서.. 
 
4.
1979년, 11월, 포병에서 항공으로 전과 신청하여 조치원에 있는 항공학교에 입교하니, 조종교관 1명당 항생 3명이 할당되어 있었다.
나의 교관님은 최고참 대위셨는데, 고참이란, 마음에 드는 학생을 먼저 선택할 수 있었나 보다.
고향 후배인 나를 고르셨다.  
한 달 정도 조종교육을 받고 나면 조원 3명 중 1~2명은 퇴교 대상이 된다.
실제로 Air Sense라고 하는 감각이 둔해, 교육 내용을 잘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애초에 어디서 배워 온 사람처럼 능숙하게 비행기를 잘 다루는 체질도 있고. 
 
나는 그 중간 정도였는데, 교관님의 배려로 무사히 졸업했다.
그 후 20년을 육군조종사, 다시 17년을 소방조종사로 먹고 살았다.  
 
이 삶이 그 교관님 덕이라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언제부터 인가 연락처도 잊은 채 살아 온 것이다.
이곳 저곳 선배, 동기들에게 물어 물어, 교관님의 연락처를 확인해 마침내 전화를 올렸다.
모처럼 전화드리니 반가워 하시면서도 한편으론  목소리에서 80대의 연세가 느껴진다.
그렇구나, 나만 70 즈음인 것이 아니구나.
더 늦기 전에 살면서 인사 드려야 할 분들을 꼭 꼭 찾아 뵈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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