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세모.(我田日記 '25.12.23)

1. 달력을 새로 걸었다. 올핸 달력 인심이 좋아졌나, 몇 군데에서 달력을 보내준다. 묵은 달력을 걷어내고 새 달력에 붙은 12월을 편다. 말린 자국 때문에 어정쩡하게 걸려 있는 12월 남은 날들은 잉여, 에누리, Margin 따위의 느낌이 들어 뭔가 얼른 치워버리고 싶다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퍼뜩 다시 돌아보니, 이 날들이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이 나이 들어 명 재촉하는 짓에 다름 아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아쉬움과 알뜰함으로 빚어내야 할  처지에 이게 왠 망발이란 말인가.    2. 왠만하면 집사람과 같은 침대에서 잔다. (혼자만 취했다거나, 저녁 먹으며 한 소리 들은 경우 등을 제외하곤)    잠결에 서로의 손이 맞닿으면 지긋이 움켜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럴 시간도 얼마나 더 남았겠느냐는 아쉬움 때문에 아담한 몸뚱이 전체가 귀한 보물인 것이다.    새벽에 소변 보러 일어나면 그때 작은 방으로 옮겨 휴대폰을 켠다. 세상사 돌아가는 것도 좀 알아야겠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수시로 페북에 뜨는 "나이든 여자와 데이트하겠냐"는 릴스도 좀 봐야 하니까.. (영어 공부 차원이다)    그리곤 날짜와 날씨를 확인한다. 그렇구나, 한 1주일 정도 남았구나. 2025년도도..

394. 작년 1월.(我田日記 '26.1.13)

1. 해가 바뀌었다. 묵은 달력을 정리한다. 작년 이맘때 집사람이 준 탁상 캘린더를 버리려다 1월달 메모를 살펴본다.    1.14(토) 향 방비엥 1.11(토) 방비엥 출방->비엔티안 도착 1.15(수) To 쿠알라룸프르 1.17(금) To 조호르바르 1.21(화) 싱가폴 출발 1.22(수) 원주 도착    요약하면 2025. 1.11일, 1년간의 라오스 코이카 파견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는 집사람과 함께 귀국하는 여행 일정이다.    귀국 1주일 전에 내가 방비엥으로 가 귀국짐 싸서 부치고,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프르와 조호르바르에서 2~3일씩 관광하고, 싱가폴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돌아온 여정이었다.    여행 출발 전 며칠 동안, 둘이서 목적지와 이동 스케줄을 짜고, Trip.com을 통해 숙소와 항공권, Pick up & sending 서비스를 예약했다.    항공권 예약번호, 출발시각, Gate 번호, Pick up Driver 폰 넘버, 호텔 예약번호, 도착예정시간 등을 정리한 Time Table을 출력하여 각자 한 장씩 지참하고, 최소한의 짐만을 꾸려 출발했다.    가는 곳마다 좋았다. 크게 비싼 곳 아니니 쿠알라룸프르에서는 Private Tour Guide를 고용하여 로컬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몇 가지 쇼핑도 했다.    2. 여행 경험담에서 읽은 대로, 비싼 싱가폴 피해서 버스로 30분 거리인 조호르바르에서 2박하며, 현지인들에게 더 인기 있는 한식집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제법 비싼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이어, 깔끔하고 세련된 싱가폴에서 보트 투어, 지하철 투어를 마치고 인천으로 향했다.    3. 1. 22. 아침, 비행기가 계류장에 접근하는 동안 이미 사람들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왜 저러지? 어차피 출구는 한 곳이고, 앞에서부터 한...

395. 檄文日誌#1(我田日記 '26.1.20)

  1. 문막에 실내파크골프장이 생겼다. 원주시에서 운영하니, "원주시 통합예약"앱에서 예약하고 가면 된다. 2주 전에 가니 4개의 타석이 텅 비어 있었다.  관리 직원이 시스템 사용법을 설명해 줘서 집사람과 함께 운동하고 왔다.    다음 주에 다시 갔다. 앞 팀이 우리가 예약한 타석에서 게임 중이다. 18홀 마칠 때까지 10분쯤 기다려 타석을 인수했다.    그 팀이 우리와 같은 클럽 소속이라는 소리에 아무 말 안했지만 매너있는 행동이라 할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시설사용시유의사항"에 분명히, 10분 전에 타석을 정리하고 정시에 다음 이용자에게 인계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그 다음날, 오랫 만에 클럽사무실에 들렀더니, 그 중 한 회원이 우릴 알아보고 반가워 하긴 했지만..  )    2. 어제('26.1.19) 또 운동하러 갔다. 시설 앞에 차를 어지러히 대 놓았다. "슬슬 사람들이 몰려오는구나, 주차선 그려야겠군" 집사람 먼저 들여 보내고, 50미터쯤 떨어진 장소에 차를 대고 연습장에 들어 선다. 예상대로 전 타석에 이용자가 와 있고 왁자지껄하다.    우릴 알아본 직원이 양해를 구한다. 시끄럽더라도 이해해 달라며.. 그러마 하고 운동을 시작한다.   우리 바로 옆 타석에 5명이 운동을 하는데, 요란스럽다. 주변은 전혀 무시한 채 있는대로 떠들어 댄다. 직원이 만류하는데도 안하무인이다.    10여분을 참다가, 우리쪽 타석으로 등을 대고 서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공손히 말을 건넨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집중할 수가 없네요"    힐끗 돌아 본다. "아니, 이런데 와서 운동하며 좀 떠들 수도 있는 거지" "혼자 와서 죽은 듯이 운동만 하다 가는 거야" "문막 살며 이런 소리 첨 들어 보네" "어디서 왔어" "어느 클럽이야"    말이 길어 진다. 클럽을 쥐고 있는 양 손...

396. 2월 檄文日誌#2(我田日記 '26.2.1)

  1. 2월이 되었다. 거실 창을 통해 식탁 밑까지 들어 오던 햇살이 슬금슬금 후퇴해 소파 중앙을 겨우 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나이 들고 늙어 가는 것이지..     4년 전, 40여년의 객지 생활을 끝내고 고향인 원주 기업도시로 돌아왔다. 고향이 좋긴 하다. 평생 고향을 지킨 중고등학교 동창들도 있고, 양가 부모님이 거주하시던 (이제는 남의 소유가 되었지만) 집들도 있고, 그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두 아이의 기억도 남아있다.    2. 사범대 졸업 후 바로 모교로 부임해 교장으로 퇴직한 동기가 있다. 원주에 정착하고 얼마 안되어, 그 친구에게, 내가  꼭 찾아뵈어야 할 은사님의 근황을 여쭈니,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우리한테 연락도 안 해줬냐고 원망하듯 물었다. 헌데 돌아온 대답이.. "원주 사는 우리도 몰랐다."였다.  "정말?, 그렇다면 애들을 어떻게 키우셨길래.." 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다시 얼마 후, 서울 사는 여자 동기가 내려왔다. 이 친구가 그 은사님댁 가까이 살아 자주 찾아 뵀다고 한다. 은사님 장례에 대해 물어 보니, 사모님이 부고 내지 말라고 강력히 말리셨다는 것이다. "왜?" "돌아 가시면서까지 주변에 폐를 끼칠 일은 아니라면서 " 한사코 말리셨다는 것이다. 산소에라도 찾아 뵈야겠다 하니, 그도 아닌 것 같단다. 유족들 뜻이 그런데 굳이 장지를 물어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겠냐며..  결국, 그렇게 그 은사님에 대한 죄스러움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다.     3. 그 무렵 캐나다로 이민 간  고교 동기 k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 함께 또 다른 고교 은사님을 뵈러 갔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후, 댁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내일 출국한다며, 남아 있던 한화를 다 챙겨 용돈을 드리는 것이다. 순간, 뜨끔했다. 이민 가서 자식 챙기고 먹고...

396. 술 빚 (我田日記 '26.2.26)

    1. 퇴직하고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집 근처 주민자치센터 레슨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몇 개월 후, 멤버 중 몇몇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는 분위기가 됐다. 남자가 나 혼자라, 한두번 내가 계산했다. 깔끔한 여자 한 분이, 돌아가며 내기로 하자고 제안했고, 그 다음부터 순서대로 돌아가며 계산했다. 몇 번의 술자리가 반복되고, 마침내 마지막 사람 차례가 됐다. 1차가 끝나고  다들 당연히 그 사람이 계산하겠거니 하고 있는데, 밍기적거리고 있다. 처음에 돌아가며 내자했던 깔끔한 여자분이 썩 나서 계산했다. (그리고 다음 날 1/n 계산서를 올렸다.) 식당 문을 나서며 그 사람이 말했다. “내가 2차 쏠게” 2차로 맥주집으로 갔다. 월남 쌀국수집에서 양껏 먹고 나온 뒤에 맥주가 들어갈 리가 없다. 아니, 그보다, 겉으로는 다들 웃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미 착 가라 앉았다.   그 이후 그 모임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2. 파크 골프장에서 몇 번 함께 운동한 부부가 있다. 홀인원을 하거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돌아오는 길에 두 부부가 몇번 같이 식사를  했다. 이 관계에서도 최근 몇 번을 내가 계산했다.    그 이후 꽤 여러 주가 그냥 지나갔다. 어쩌다 운동하다 얼굴 마주쳐도 밥 한번 먹자는 얘기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3. 어제 집사람과 함께 동아리 활동하는, 그집 아낙네가,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고 하더란다. 딱히 내키지 않는다. 그냥 둘이 마시는 게 더 맘 편하지, 굳이 같이.. 딴 건 몰라도 술빚은 결코 잊으면 안되는 내게,  그 제안은 이미 쉬었다.    4. 이를 계기로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은혜를 입고도 그저 내 바쁘다는 핑계로  감사를 표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는지를..    있다, 아니 많...

398. 70 즈음에 (我田日記 '26.5.9.)

1. 나이 들면 "낄끼빠빠"를 잘해야 한다고 익히 들어왔다. 거기에 나는 예외라고 속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믿어 왔고(왜냐, 난 아직 늙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전,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밴드에서 벗어났다. 할 말이야 많지만, 결국 평생 다르게 굳어진 사람들이 원만히 어울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밴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나이가 연출하는 추한 모습들에 실망해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자" 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왕 결심한 이상 밴드 뿐만 아니라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2개의 다른 기타 동아리에서도 탈퇴했다.  속이 후련해지며 일상이 평안을 되찾았다.    나이 들어서(이제서야 겨우 인정하는 바이지만) 함부로 어디 가입하는 거 아니다 란 교훈을 얻었다.    2. 노인복지관 밴드에서 탈퇴하고 나서, 신규 멤버를 모집하는  밴드를 찾아가 봤다. 이곳은 제법 실력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한 달을 다니고 다시 물러 나왔다. 그들 수준에 맞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 동안 오래 봐왔던 클래식 기타 동아리를 찾아 갔다. 여기는 고수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모임에 가입할까 망설이다 가입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도 나의 기타 수준은 꼬래비인데, 나이는 최고령 층에 속했다. 서로 부담스러웠다. 내 어쭙잖은 연주를 보며 젊은 회원들이 한 마디 쯤 해주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어렵고, 내 입장에선 그들이 어렵게 한 얘기가 자존심을 건드렸다.   결국 이전처럼 혼자서 기타를 치기로 마음 먹었다.      나이 들어 어딘가에 가입한다면, 그곳은 내가 나이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이제 나는 분명히 나이 들었다는 사실 인정과 함께.   3. 동네 "정보화 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AI활용 강좌에 등록했다. 강좌 타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