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술 빚 (我田日記 '26.2.26)

 

 
1.
퇴직하고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집 근처 주민자치센터 레슨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몇 개월 후, 멤버 중 몇몇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는 분위기가 됐다.
남자가 나 혼자라, 한두번 내가 계산했다.
깔끔한 여자 한 분이, 돌아가며 내기로 하자고 제안했고, 그 다음부터 순서대로 돌아가며 계산했다.

몇 번의 술자리가 반복되고, 마침내 마지막 사람 차례가 됐다.
1차가 끝나고  다들 당연히 그 사람이 계산하겠거니 하고 있는데, 밍기적거리고 있다.
처음에 돌아가며 내자했던 깔끔한 여자분이 썩 나서 계산했다.
(그리고 다음 날 1/n 계산서를 올렸다.)

식당 문을 나서며 그 사람이 말했다. “내가 2차 쏠게”
2차로 맥주집으로 갔다.

월남 쌀국수집에서 양껏 먹고 나온 뒤에 맥주가 들어갈 리가 없다.
아니, 그보다, 겉으로는 다들 웃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미 착 가라 앉았다.  
그 이후 그 모임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2.
파크 골프장에서 몇 번 함께 운동한 부부가 있다.
홀인원을 하거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돌아오는 길에 두 부부가 몇번 같이 식사를  했다.
이 관계에서도 최근 몇 번을 내가 계산했다. 
 
그 이후 꽤 여러 주가 그냥 지나갔다. 어쩌다 운동하다 얼굴 마주쳐도 밥 한번 먹자는 얘기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3.
어제 집사람과 함께 동아리 활동하는, 그집 아낙네가,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고 하더란다.
딱히 내키지 않는다.
그냥 둘이 마시는 게 더 맘 편하지, 굳이 같이..
딴 건 몰라도 술빚은 결코 잊으면 안되는 내게,  그 제안은 이미 쉬었다. 
 
4.
이를 계기로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은혜를 입고도 그저 내 바쁘다는 핑계로  감사를 표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는지를.. 
 
있다, 아니 많다.  
 
중고등학교 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은사님께, 생전에 제대로 인사 한 번 드린 적이 없는데 이미 고인이 되셨고,
평생 조종사로 밥 벌어 먹게 해주신 군 조종 교관이 한 분  계신데, 현직 시절 그 분의 연락처도 모른 채 살아왔다.
부랴부랴 주변의 도움으로 교관님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전화로 인사를 드렸다.
이어 설 명절에 즈음해 자그만 물품을 보냈다.
물품이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주셨다. 그걸로 명절 잘 쉬시겠다고..
80대 노인네의 갈라진 음성으로. 
 
이어, 아직 생존해 계신 은사 몇 분의 연락처를 구해, 같은 물품을 보내드렸다.   
 
5.
더 살펴보니 중고교, 사관학교를 함께 한 동기 둘이 있다.
한 동기네 집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신세를 졌는데, 제대로 답례를 못했다.
내가 흉 보던 사람들보다 나는 더했다.
어느 날 그 동기가 홀연히 세상을 떴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 이제 어떡하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또 다른 동기가, 투병하는 집사람과 원주엘 다녀 갔다. 
한동안 사는 얘길 하다, 이 두사람이 교회 다니는 거 빼곤 취미생활을 같이 하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부랴부랴, 두 사람 분의 파크 골프 장비를 준비했다.
날 풀려 원주에 내려 오면 슬쩍 전할 예정이다. 
 
6.
6촌 이모 부부가 근처에 사신다.
살면서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이 또한 제대로 갚지 못했다.
이모가 처녀 때 클래식 기타를 깔끔하게 연주했었다는 생각이 났다.
가지고 있던 우쿨렐레 한 셋을 선물했다.
금방 연주를 하신다.
레슨을 받고 싶다 하길래, 원주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정보를 알려 드렸다.
즉시 등록했다고 연락이 왔다.
한 꺼플 마음의 짐을 덜었다. 
 
술빚 따지다 보니 그보다 더한 것이 많다.
더 늦기 전에, 밀린 빚 갚으려 급한 몸짓을 하게 된다.
내가 씹는 사람들과 나는,  이렇게 다르다는 변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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